편견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대화와 상호 이해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타자성과 상호 이해를 통한 편견 극복
편견(prejudice)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조건이자 삶의 일부분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기 마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편견은 과연 극복 가능한 것일까요?
프랑스 현상학자 폴 리쾨르는 편견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열린 자세와 상호이해를 통해 편견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편견의 불가피성과 해석학적 순환
리쾨르에 따르면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형성합니다. 이를 그는 '타자성(他者性)'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 상호작용하며 그들의 시선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정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편견과 선입견이 개입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의 경험과 삶의 맥락이 다르기에,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란 불가능합니다. 이에 우리는 자신의 기존 지식과 가치관에 기반해 상대방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관념들이 바로 편견인 셈이지요.
하지만 리쾨르는 이러한 편견을 단순히 부정적인 것으로만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해석학적 순환고리를 통해 편견의 변화와 발전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리쾨르가 말하는 해석학적 순환이란, 우리가 지닌 선(先)이해와 편견을 인정하고 이를 실제 대상에 비추어 수정해나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텍스트나 대화 상대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기존의 선입견을 갖고 있지만, 이후 상호작용을 거치며 편견을 교정해나가는 것이지요.
즉, 우리가 가진 편견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며 변화 가능한 것입니다. 리쾨르에 따르면 해석과 이해의 순환구조 속에서 편견 또한 수정되고 발전하게 됩니다. 모종의 선이해를 바탕으로 대상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 다시 선이해와 편견을 수정해나가는 과정이 지속되는 것이지요.
해석학적 순환의 관점에서 보면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열쇠는 바로 '상호주관성'에 있습니다. 나와 타인은 동등한 위치에 있으며, 우리는 상대방의 관점과 맥락을 포용하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대화와 상호 이해
리쾨르에 의하면 해석과 이해를 위해서는 대화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열린 자세로 타인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서로의 선입견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가운데 상호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관점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편견을 반성하는 대화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편견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자아 실현과 편견 극복
한편 리쾨르는 상호이해를 통한 편견 극복이 결국 자아실현으로 이어진다고 보았습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거치며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 실존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편견과 선입견이 아닌,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아실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폴 리쾨르는 타자성의 관점에서 편견의 문제를 조명했습니다. 물론 그의 논의가 편견 해소를 위한 궁극적인 해법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편견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되, 대화와 상호이해를 통해 편견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실천적 지평을 열어주었습니다.
편견은 타자를 왜곡하고 배제하는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