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사회의 진정한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다수의 지배가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진정한 권력은 다수의 지배에 있지 않다
민주주의의 꽃, 다수의 권력? 아니면 폭력의 씨앗? 20세기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제시하는 다수의 권력 개념은 민주주의의 핵심을 새롭게 비추고, 의사소통과 시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다수의 지배가 제도화된 오늘날, 아렌트의 통찰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권력'이란?
한나 아렌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로, 전체주의와 폭력, 권력에 대한 그녀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큰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그녀의 '다수의 권력(power of the many)'에 대한 독창적인 관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본질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아렌트는 권력을 단순히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권력은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즉, 권력은 다수가 집단적으로 의지를 모아 행동할 때 발현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다수에 의한 지배 자체가 진정한 권력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수의 자발적 단결과 협력이 바로 권력의 원천인 셈입니다.
다수의 권력이 왜곡될 때
하지만 아렌트는 다수의 권력이 지속되면 결국 소수의 독재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다수가 수동적으로 복종하기만 할 경우, 권력의 기반인 자발적 단결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 결과 권력은 폭력적인 지배수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처럼 아렌트는 다수의 지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지속과정에서 권력이 왜곡되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진정한 다수의 권력을 위한 조건
그렇다면 진정한 다수의 권력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을까요? 아렌트에 따르면 이를 위해서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장이 필수적입니다.
그녀는 "권력은 언제나 다수가 행동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의사소통적 토대 위에서만 존재한다"라고 역설했습니다. 다수가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합의를 이루어갈 때 비로소 건강한 권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반면 의사소통의 통로가 차단되고 다수가 수동적 복종만을 강요받는다면, 권력은 점차 왜곡되고 폭력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렌트는 이를 '행동의 고갈(accumulation of powerless)'이라 명명했는데, 다수의 자발성이 사라지면서 권력 또한 소멸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결국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보장되지 않는 다수의 지배는 진정한 권력이 아닌 폭력의 지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다수의 권력과 민주주의
아렌트의 이런 관점은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넘어, 다수의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조건을 환기합니다. 건전한 다수의 권력을 위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되고, 열린 토론과 합의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의회나 시민단체 등 다양한 여론이 수렴되는 제도적 장치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동시에 다수가 자발적으로 권력 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의식 또한 필수적임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의 지배가 제도화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다수의 권력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도 여전히 의사소통의 한계, 다수의 무기력함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렌트의 고민은 바로 이런 현실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녀는 권력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통해 해법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녀의 통찰을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