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와 객체의 분리, 객관적 진리의 딜레마, 도구화된 실재에 대한 불안... 인식과 실재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고정된 진리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실재
주체와 객체, 인식과 실재. 우리는 이러한 개념들을 흔히 분리해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구분이 정당한 것일까요? 하이데거와 로티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합니다.
두 사상가는 인식과 실재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해석 과정 속에서 구축된다고 주장합니다.
인식과 실재에 대한 하이데거와 로티의 견해는 주체와 객체를 엄격히 구분하는 전통 형이상학적 사고를 거부하고, 상호작용과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이르는 사유의 기반과 초점에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현실에 실존하는 존재
하이데거는 인간 현존재(Dasein)가 세계 내에 '내던져짐(Geworfenheit)'으로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이미 세계에 속해 있으며, 세계를 향해 본래적으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인식 주체와 객체를 분리할 수 없으며, 인식은 그저 주체에 의해 독자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닌 세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통찰은 주체 중심의 인식론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주체와 객체의 대립이 아닌 '현실에 실존하는 존재'라는 인간의 유한하고 역사적인 상황 자체가 선행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존재방식에 따라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이를 통해 '비로소' 실재가 우리에게 열리게 됩니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선입견 없는 개방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기술 문명이 실재를 도구적 대상으로만 대하는 '세계상실'의 위험을 경계합니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실재 인식은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보존하는 '알레테이아(Aletheia)'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언어 실천과 해석
한편 로티 또한 주체와 객체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을 부정하지만, 보다 언어 실천과 해석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그는 우리가 세계에 대한 객관적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며, 오직 상호주관적인 합의를 통해서만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로티가 말하는 '상호주관적 합의'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개념과 관련됩니다. 진리는 특정 언어공동체 내에서 잠정적으로 수용된 믿음일 뿐이며, 우리가 공유하는 언어적 관행과 생활양식에 따라 구성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재에 대한 어떤 인식이나 진술도 객관적 실재 그 자체를 반영하기보다는 우리의 해석적 시각을 드러낼 뿐입니다.
인식과 실재의 상호작용
이처럼 하이데거와 로티 모두 초월적 실재나 불변의 본질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실재는 우리의 삶과 역사적 상황, 언어적 실천 속에서 비로소 구성되며, 인식 또한 주관적 구성이 아닌 세계 및 타자와의 상호작용과 해석의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두 사상가의 견해가 주는 실천적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 삶의 유한성과 현실적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이해와 경험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 언어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맥락을 초월한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해를 모색해야 합니다.
또한 상호 이해와 개방적 대화를 중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의 경영진과 직원, 지역 주민 간의 갈등 상황에서 각자 자기 주장만 내세우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의 입장을 경청하고 소통하려 노력한다면 보다 생산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실재를 도구화하거나 관리하려 드는 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예컨대 환경 정책을 결정할 때 자연을 단순한 자원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유한 생명력과 가치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하이데거와 로티의 사상은 인식과 실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주체와 객체를 분리하지 않고, 상호 관계와 해석의 연속 속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구성해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