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 진정한 관계성과 책임감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을까?
개인과 공동체를 아우르는 보편 윤리
20세기 유대계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사회관계(Gemeinschaft)' 또는 '인간관계(Menschliches Miteinander)'를 중시하며 진정한 '만남'의 중요성을 역설한 사상가입니다.
그는 1923년 발표한 저서 '나와 너'(Ich und Du)를 통해 '나-너' 관계와 '나-그것' 관계를 구분하는 핵심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만남 윤리
부버에 따르면 '나-그것' 관계는 도구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로, 상대를 객체화하고 소유하려 합니다. 반면 '나-너' 관계는 상호주체성을 전제로 하며, 개방성과 책임감에 기초합니다. 이는 대상이 아닌 '너 자체'를 향한 관계로서 역동적 '만남의 장(場)'을 이룹니다.
그는 이 '만남'이 인간 실존의 본질이자 참된 삶의 의미라고 보았습니다. 타자와의 진정한 만남을 통해서만 자아실현이 가능하며, 이로부터 사회변화 원천이 시작된다고 믿었습니다. 부버에겐 '만남의 말씀'이야말로 윤리와 영성의 근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1938년 프랑크푸르트로 피신한 부버는 나치 독일의 반인간적 정책을 직접 목격하며, 그의 사상은 한층 더 깊어졌습니다. 비인간화와 massification(집단으로의 동화)의 문제를 고민하며 부버는 개인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중시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보편윤리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열리는 상호이해의 장이었습니다.
현대 사회 딜레마
오늘날 부버 사상의 현대적 의의는 여전히 큽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가운데, 그는 관계성과 책임감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우리는 고립된 '나'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자아실현과 사회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평화운동은 부버 사상의 중요한 실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간디는 영국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폭력이 아닌 타자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목표를 이뤘습니다. 이는 부버가 강조한 "사회관계"의 가치가 사회운동에 구현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부버 사상은 하이데거의 현존재 개념, 레비나스의 '타인의 얼굴' 윤리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현대 실존주의 철학과 윤리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입니다. 그럼에도 부버가 지나치게 관계성에만 매몰돼 개인의 자율성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최근 부버 사상 연구는 페미니즘, 생태철학과의 연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의 관점에서 동물, 식물, 환경까지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만남'을 지향합니다. 초개인주의를 넘어선 보편윤리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죠.
부버가 제시한 '만남의 윤리'는 타자에 대한 열린 자세와 상호성을 전제로 합니다.
이는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의 포용, 강요가 아닌 상호이해를 지향합니다. 결국 부버적 관점에서 바라본 보편윤리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되,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를 아우르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다양한 윤리적 균열을 메우기 위해서는 상호주체적인 만남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통해 보다 통합적이고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버의 '만남의 말씀'이 제시하는 대화와 포용, 그리고 무한한 책임의 정신이야말로 보편타당한 윤리를 향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